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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최강 동안! 이길여 총장은 누구일까?

by 롤모델 202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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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동안으로 알려진 올해 한국 나이로 93세인 이길여 총장은 어떤 분일까? 93세의 나이지만 20년 이상 젊어 보이는 비결은 무엇이며, 그의 지나온 발자취들을 같이 알아봅니다.

 

 

93세 최강동안 이길여 총장

 

프로필

전북 옥구군 대야면에서 정미소집 둘째 딸로 태어난 이길여 회장의 약력을 알아봅니다. 어렸을 당시 우리말을 쓰면 뺨을 맞던 일제 식민지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졸업쯤 해방을 맞이했다.

Ω가천길재단 공식 홈페이지

이름 이길여 (전주 이씨) 현직 가천길재단 회장
가천대학교 총장
경인일보 회장
가천문화재단 명예이사장
가천대 길병원 명예이사장
출생 1932년 6월12일
전라북도 옥구군 대야면 죽산리
학력 한국과학기술원(이학/명예박사)
단국대학교(교육학/명예박사)
니혼대학 대학원(의학.박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학/학사)
이리여자중학교
대야국민학교
거주 인천시 연수구 옥련동 직업 의사, 교육인

 

 

발자취

1951년 전북 전주 전시연합대학 정문에 합격자 방(榜)을 보던 사람들은 이름을 보고 쑥덕거렸다고 한다. 서울대 의대 합격한 남학생 이름이 여자 이름 같다는 것이었다. 여학생이 그 당시 서울대 의대 합격 했다는 것은 당시로선 매우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해 서울대 의대 신입생 120명 중 여학생은 9명. 그 당시 전쟁으로 남학생이 줄어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다.

 

그 당시 서울대에는 어떻게 들어갔을까?

어릴 적에는 일제 식민지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중학교 시절에는 사회가 어수선했고, 고등학교 3학년 무렵에는 6.25가 터진 때 어떻게 대학을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그는 방공호에 들어가 입시 공부를 했다. 그 당시 전시 상황에 따라 전주. 부산. 서울을 옮겨 다니면서 까지 입시 공부를 했고, 서울대에 당당히 합격하게 된다.

 

처음 산부인과를 선택한 이유는 옛날에는 남자 의사가 많았던 시절이어서,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는 여성들이 많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작은 병이 큰 병이 되고, 산후조리 후유증에 시달리는 여자들이 많아서 그들을 돌봐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길여 총장은 "의사가 돼서 많은 사람을 치료해 주는 게 내 삶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라고 말한다. 

산부인과 개원
1958년 5월 인천 용동에 산부인과 개원 / 가천 홈페이지

 

1958년 인천에서 동창생과 동업하여 자성의원을 인수해 이길여 산부인과로 개원하고 병원운영을 시작했다. 그 당시 산부인과 여성의사가 거의 없어, 많은 환자가 있었다. 선진 의료를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가게 되는데, 그때 많은 환자들이 가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해외 유학을 가면 많은 유학길에 오른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 당시 우리나라와 해외의 문화적의 극명한 차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유학길에 오르기 전에 많은 환자들과 약속했다. 5년 뒤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미국의 심장부 뉴욕에 있는 퀸즈 종합병원에서 동료 수련의들과 함께 한 모습 / 가천 홈페이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길여
1968년 11월 유학을 마치고 귀속 / 오른쪽에서 5번째 / 가천 홈페이지

 

이후 더 나은 의료 연구를 위해 일본 유학을 하게 된다. 미국 유학 후 귀국하여 '이길여산부인과'를 재개원한 지 약 6년 안팎이 지날 무렵, 환자 진료에 몰두하던 가천은 미국에서 가져온 책들을 포장도 풀지 않은 채 먼지가 쌓이게 한 자신을 반성한다. 이와 관련, 가천은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위해 더 연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1975년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는 신장학의 권유자인 다케우치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일본 대학에 들어가서 무려 3백 마리가 넘는 토끼를 해부하며 연구에 전념했다.

일본 유학당시 모습
일본 유학당시 모습 / 가천 홈페이지

 

 

 

이길여 회장은 '최강 동안'으로도 화재의 인물이다. 나이에 맞지 않게 꼿꼿하고 카랑카랑하며, 외모 또한 그 나이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반적으로 90세 이상을 생각하면 지팡이, 보청기, 임플란트 등 노년의 기본적인 것들을 생각한다. 나이 90을 넘긴 것에 메타버스. 인공지능에 반도체 산업 흐름까지 꾀차고 있다.

 

가천대에서는 '별에서 온 총장님'이라는 애칭이 있다. 또는 총장을 '가천대 아이돌'이라고도 한다. 여고생들은 총장님을 보고 연예인을 만난 듯 환호하기도 한다.

 

성공가도를 달렸고 성공의 정상에 서 있지만 지금까지 결혼도 안 하고, 가족도 없다. 오로지 아이들, 병원에서는 환자만 생각한다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젊었을 때는 공부와 일에 빠져 있었고, 의사가 되어서는 환자에 빠져 살았다고 말한다.

 

본인이 결혼을 했다면 가정에 충실하느라 현재의 성공은 이루지 못했을 거이라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에게 남편과 자식은 환자들이며, 학생들이라고 말한다. 

졸업생에게 청진기 선물
사진/가천대

 

 

 

 

젊은 유지 5가지

한국 나이로 93세인 그의 동안 비결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유명 연예인도 관리하기 어렵고 의학 기술로도 어려운 일이다. 그가 말하는 동안 비결 5가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최강동안 이길여

 

총장배 골프대회

 

1.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고, 음식을 절대로 짜게 먹지 않는다.

인체의 80%가 수분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물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하루에 물은 8잔을 마셔야 한다. 평소에 과일 채소를 자주 섭취하시는 분들은 목이 마를 때 섭취를 하면 된다.

 

짜게 먹는 습관은 혈압 상승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이는 고혈압 및 심혈관, 뇌혈관, 심장 및 안과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음식을 싱겁게 먹는 습관이 있다.

물건강 정보 7가지
동안 비결의 첫번째

2.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상황을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예일대 의과대학에서 2008년~2012년까지 444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스트레스가 노화를 가속화한다. 인슐린 저항성과 같은 생물학 직접 노화를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감정조절 능력은 노화가속을 완화하며 인슐린 저항성 또한 감소시킨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만 늙고 손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한다.

 

3. 93세이지만 일을 놓지 않는다.

그는 하루 4시간씩 자며 일을 한다고 한다. 그의 철학 중에는 "멈추는 죽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일해야 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루 7시간 이상의 수면이 건강에 필수라고 알고 있다.

 

4.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

지금까지 혼자 살면서 퇴근 후 집에 들어가면 아무도 없으니 외로울 만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누가 있으면 불편할 것 같다고 한다. 혼자 살면서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치매의 걸릴 확률이 70~80% 높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수면을 저하시키고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코르티솔 분비가 수면 장애를 일으킨다. 이는 외로움과 상호 작용으로 더 큰 질환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한다.

 

외로움을 타지 않고 바쁘게 활기차게 생활하는 것이 동안과 젊음의 비결인 것 같다. 또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열정을 잃지 말라고 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바람개비를 좋아했다. 바람개비는 역풍이 있어야 돌아가기 때문이다. 인생의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힘껏 살아내는 게 자신을 삶을 지키는 원동력이라고 한다.

 

5. 스테퍼와 규칙적인 운동

그는 매일 아침 스트레칭을 하고 하루 1시간 산책을 한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땐 집에서 러닝 머신이나 스텝퍼로 운동을 한다고 말한다. 또한 남들과 어울리기 위해 골프를 즐기기도 하는데 이것이 유일하게 건강을 위해 돈을 쓰는 일이라고 한다. 

 

 

 

 

성공비결

20년 전 MBC 성공시대의 출연한 그 당신 성공 비결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 성공 비결을 4가지로 이야기한다. 압축하여 4가지이지만, 그 이상의 땀과 노력들이 있었을 것이다.

MBC 성공시대 출연

 

1. 구박덩이의 오기

구박덩이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늘 구박을 받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옛날에는 집안에 아들을 원했었는데 어렸을 때 천덕꾸러기 둘째 딸로 태어난 것이다. 그렇게 자라면서 구박덩이의 외톨이였다. 그 당시 유일하게 전기가 들어왔던 방앗간에서 공부를 했다. 친구들에게는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했다. 그래서 자신만의 비밀 장소에서 공부를 하곤 했다.

 

2. 일에 미쳐라

병원 꼭대기의 자신을 방을 만들고, 침실이 모자랄 때는 자신의 방에는 환자를 들였다. 시집갈 나이에 들어온 선 자리를 마다하고 선 볼 시간이 있으면 잠이나 실컷 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일하는 즐거움과 재미에 평범함을 잊고 살았다. 독신주의는 아니었는데, 지금까지 안 했으면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3. 어머니의 사랑

그의 나이 15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세는 기울어진다. 그는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로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그의 어머니 또한 그가 공부하는 모습에 매우 대견하게 여겼다. 어렸을 때부터 의사가 되고 싶어 한 그는 당시 할머니로 부터 의사가 되겠다는 그의 말에 '가시네가 무슨 의사냐'며 많이 혼났다. 그 시절 그의 꿈을 지켜준 건 어머니였다. 그의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내가 없다'라고 말한다. 강력한 후원자가 어머니셨다고 한다.

1978년 종합병원 길병원 개원
종합병원 개원당시 모습

 

4. '나' 아니면 못한다.

976년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며 학국으로 돌아와서 1978년 의료 종합병원 길병원을 개원한다. 그 당시 종합병원 건립에는 12억 원이 들어가는 엄청난 사업이었다. 경인지역 최고 병원으로 키워냈다.

 

이 당시 여자 혼자 힘으로 7개의 종합병원을 건립하였다.

 

 

정리

최강 동안으로 알려진 이길여 총장은 나이에 비해 20년은 젊어 보이며, 지금의 나이에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 더 동안 비결에 한몫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젊음의 비결 5가지 이외에 열정을 더한 그의 삶이 대단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젊었을 때 남들 하는다 다 하는 것보다 자기가 하는 일에 1등이 되어라. 남다른 식견과 50년대 전쟁 중에서도 의사가 되겠다는 강직한 신념하에 공부를 하고 원하는 바를 성취한다는 것을 보면, 환경과 주위를 탓할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며,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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